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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ry of Inherent Territory and Recognition of Dokdo in Japan
일본 정부는 2008년 이후 ‘다케시마(독도)는 역사적 국제법상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본고의 목적은 일본 주장의 근간을 이루는 ‘고유영토론’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일본 측 관찬사료의 분석을 통해 역사적으로 일본의 독도인식이 어떠했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우선 17세기에 울릉도 도해를 하였던 오야 · 무라카와 양가의 기록과 메이지 시기의 문서들을 보면 독도는 울릉도의 부속섬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는 요시다 쇼인의 문서에서도 나타나는데 죽도(울릉도), 대판도(댓섬), 송도(독도)를 합하여 죽도(울릉도)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해도, 수로지, 수로잡지 등 해군성 사료와 『죽도고증』, 「일본외교문서」, 「조선국교제시말내탐서」 등 외무성 사료에서도 송도(독도)와 죽도(울릉도)는 겐로쿠 시기 ‘죽도일건’에 의해 이미 일본의 판도 밖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내탐서」에서 ‘죽도와 송도가 조선의 부속이 되어있는 경위’를 조사하여 보고한 것도 겐로쿠 시기 쓰시마번의 대조선 관계 문서를 검토한 결과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근세 및 근대 일본 측의 사료를 통해 보면 독도는 일본 판도의 밖으로 조선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음이 명확하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독도에 대한 고유영토론은 성립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