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的创作背景和悲怆的性格","authors":"이승준","doi":"10.32428/poetry.46..201901.31","DOIUrl":null,"url":null,"abstract":"본고의 목적은 의 창작과 관련한 역사적 맥락의 이해를 토대로 작품의 주제의식과 정서적 특질의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다. 오늘날 의 창작 배경으로 주목받는 작가 이현(李俔, ?~?)의 영위사 업무는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이현이 영위사로 활동한 계기는 일본의 봉공 요구에 따라 파견된 봉왜명사(封倭明使)를 접반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봉왜명사의 파견이 조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명의 강요와 압박을 통해 진행된 결과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봉왜명사의 파견은 당대인의 화이론(華夷論)적 세계관에서도 대단히 문제적이었다. 예교의 전통이 구현되어 있는 조선이 명의 압력에 의해 이적(夷狄)인 왜와 굴욕적인 협상을 맺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은 부정적인 전망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n이러한 점은 자서(自序)에서 의 창작 동인이 기자(箕子)의 맥수가(麥秀歌)나 양홍(梁鴻)의 오희가(五噫歌)와 같은 비가(悲歌)에 대한 청중의 요청에 부응한 결과로 밝힌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의 주요한 정서적 특징이 비가적 성격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동인이 맥수가나 오희가와 같은 이념적 층위의 문제의식과 관련됨을 의미하는바, 이는 작품의 이해를 진전시키기 위해 반드시 검토해야 할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n상기한 문제의식을 전제로 본고에서 주목한 것은 먼저 이 명과 조선 사신모두에게 익숙한 백상루 제영시의 창작 전통과 관련되는 부분이다. 의 도입부에서 제영시의 압운 규칙과 선경(仙境)에 대한 묘사는 백상루를 소재로 하는 문학 향유의 전통과 관련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만 양호의 영위사로서 임진왜란의 현실이 반영된 창악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던 이현은 재래의 창악에 만족하지 않고 백상루 제영시의 창작 전통을 토대로 을 창작하였다고 판단된다.\n이와 같은 백상루 제영시의 창작 전통에 따라 의 미감 또한 전반부에서는 화락한 이미지를 통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감은 영사(詠史)와 회고(懷古)의 과정을 통해 비애의 정서로서 급격히 전환되어 버린다. 봉왜명사가 파견된 조선의 비참한 현실은 영위사 업무를 수행하며 전란 회복의 일선에서 분투하던 이현으로 하여금 절망적인 심리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따라서 작품의 결말에 귀기를 헤아리며 시름 겨워 하는 화자의 형상은 타향살이의 소회를 넘어서 이러한 지점을 기반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PeriodicalId":360230,"journal":{"name":"Korean Classical Poetry Studies","volume":"1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1900-01-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title\":\"의 창작 배경과 비가(悲歌)적 성격\",\"authors\":\"이승준\",\"doi\":\"10.32428/poetry.46..201901.31\",\"DOIUrl\":null,\"url\":null,\"abstract\":\"본고의 목적은 의 창작과 관련한 역사적 맥락의 이해를 토대로 작품의 주제의식과 정서적 특질의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다. 오늘날 의 창작 배경으로 주목받는 작가 이현(李俔, ?~?)의 영위사 업무는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이현이 영위사로 활동한 계기는 일본의 봉공 요구에 따라 파견된 봉왜명사(封倭明使)를 접반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봉왜명사의 파견이 조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명의 강요와 압박을 통해 진행된 결과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봉왜명사의 파견은 당대인의 화이론(華夷論)적 세계관에서도 대단히 문제적이었다. 예교의 전통이 구현되어 있는 조선이 명의 압력에 의해 이적(夷狄)인 왜와 굴욕적인 협상을 맺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은 부정적인 전망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n이러한 점은 자서(自序)에서 의 창작 동인이 기자(箕子)의 맥수가(麥秀歌)나 양홍(梁鴻)의 오희가(五噫歌)와 같은 비가(悲歌)에 대한 청중의 요청에 부응한 결과로 밝힌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의 주요한 정서적 특징이 비가적 성격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동인이 맥수가나 오희가와 같은 이념적 층위의 문제의식과 관련됨을 의미하는바, 이는 작품의 이해를 진전시키기 위해 반드시 검토해야 할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n상기한 문제의식을 전제로 본고에서 주목한 것은 먼저 이 명과 조선 사신모두에게 익숙한 백상루 제영시의 창작 전통과 관련되는 부분이다. 의 도입부에서 제영시의 압운 규칙과 선경(仙境)에 대한 묘사는 백상루를 소재로 하는 문학 향유의 전통과 관련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만 양호의 영위사로서 임진왜란의 현실이 반영된 창악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던 이현은 재래의 창악에 만족하지 않고 백상루 제영시의 창작 전통을 토대로 을 창작하였다고 판단된다.\\n이와 같은 백상루 제영시의 창작 전통에 따라 의 미감 또한 전반부에서는 화락한 이미지를 통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감은 영사(詠史)와 회고(懷古)의 과정을 통해 비애의 정서로서 급격히 전환되어 버린다. 봉왜명사가 파견된 조선의 비참한 현실은 영위사 업무를 수행하며 전란 회복의 일선에서 분투하던 이현으로 하여금 절망적인 심리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따라서 작품의 결말에 귀기를 헤아리며 시름 겨워 하는 화자의 형상은 타향살이의 소회를 넘어서 이러한 지점을 기반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PeriodicalId\":360230,\"journal\":{\"name\":\"Korean Classical Poetry Studies\",\"volume\":\"1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1900-01-0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Korean Classical Poetry Studies\",\"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32428/poetry.46..201901.31\",\"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Korean Classical Poetry Studies","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32428/poetry.46..201901.31","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본고의 목적은 의 창작과 관련한 역사적 맥락의 이해를 토대로 작품의 주제의식과 정서적 특질의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다. 오늘날 의 창작 배경으로 주목받는 작가 이현(李俔, ?~?)의 영위사 업무는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이현이 영위사로 활동한 계기는 일본의 봉공 요구에 따라 파견된 봉왜명사(封倭明使)를 접반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봉왜명사의 파견이 조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명의 강요와 압박을 통해 진행된 결과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봉왜명사의 파견은 당대인의 화이론(華夷論)적 세계관에서도 대단히 문제적이었다. 예교의 전통이 구현되어 있는 조선이 명의 압력에 의해 이적(夷狄)인 왜와 굴욕적인 협상을 맺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은 부정적인 전망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점은 자서(自序)에서 의 창작 동인이 기자(箕子)의 맥수가(麥秀歌)나 양홍(梁鴻)의 오희가(五噫歌)와 같은 비가(悲歌)에 대한 청중의 요청에 부응한 결과로 밝힌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의 주요한 정서적 특징이 비가적 성격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동인이 맥수가나 오희가와 같은 이념적 층위의 문제의식과 관련됨을 의미하는바, 이는 작품의 이해를 진전시키기 위해 반드시 검토해야 할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상기한 문제의식을 전제로 본고에서 주목한 것은 먼저 이 명과 조선 사신모두에게 익숙한 백상루 제영시의 창작 전통과 관련되는 부분이다. 의 도입부에서 제영시의 압운 규칙과 선경(仙境)에 대한 묘사는 백상루를 소재로 하는 문학 향유의 전통과 관련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만 양호의 영위사로서 임진왜란의 현실이 반영된 창악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던 이현은 재래의 창악에 만족하지 않고 백상루 제영시의 창작 전통을 토대로 을 창작하였다고 판단된다.
이와 같은 백상루 제영시의 창작 전통에 따라 의 미감 또한 전반부에서는 화락한 이미지를 통해 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감은 영사(詠史)와 회고(懷古)의 과정을 통해 비애의 정서로서 급격히 전환되어 버린다. 봉왜명사가 파견된 조선의 비참한 현실은 영위사 업무를 수행하며 전란 회복의 일선에서 분투하던 이현으로 하여금 절망적인 심리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따라서 작품의 결말에 귀기를 헤아리며 시름 겨워 하는 화자의 형상은 타향살이의 소회를 넘어서 이러한 지점을 기반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