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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ligious Hybridity of West Malaysia and The Church as a Messenger of Reconciliation
1874년 빵꼬르조약 이후 영국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식민정책을 영국령 말라야에서 실행했다. 화인과 인도인을 주석광산과 고무농장으로 이주시킨 결과로 말레이시아에 종족과 종교가 연관된 다민족사회가 형성됐다. 그런데 서말레이시아의 종교적 혼종성은 더 오랜 역사를 지녔다. 1400년에 세워진 멀라까왕국에서 이슬람을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토착신앙, 불교, 힌두 그리고 이슬람이 공존했다. 1511년 멀라까왕국이 멸망하고 포루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식민지배할 때도 토착신앙, 불교, 힌두, 이슬람 그리고 기독교가 공존하는 다민족사회였다.BR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은 연방의 종교이며 헌법에서 무슬림으로 규정된 말레이인이 정치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 두 말레이정당인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와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이 정치 권력을 두고 경쟁하면서 이슬람은 핵심 주제가 되었고, 지속적인 이슬람화가 진행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생존과 공존을 위해서 종교적 혼종성을 핵심요소로 한 지역신학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화해의 사자로서 교회는 기독교인이 화해의 대리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일상의 삶에서 화해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