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The 1946 Cholera Pandemic in Pusan and Kyŏngnam, and the Post-Asian Pacific War Regional Politics of East Asia","authors":"Chong-Myong Im","doi":"10.52271/pkhs.2023.08.126.243","DOIUrl":null,"url":null,"abstract":"1946년 5월 상순 중국 송환자에게서 콜레라가 발병하기 시작한 부산 지역은 그달 중순 무렵 남조선에서 발병자 규모가 가장 큰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6월 중순 무렵부터 콜레라 환자 발생 증가 정도가 둔화하기 시작해, 하순 경에는 발병세가 적잖이 ‘약화’하였다. 부산 지역 발병 추이는 경상남도 군부(郡部) 지역과 타도(他道) 지역의 그것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것은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인 콜레라의 발병 상황을 악화시켰던 6월 하순의 대홍수였다. 부산과 달리 홍수 피해가 심각하였던 군부(郡部) 지역에서는 콜레라 발병세가 증대·악화하였다. 이러한 속에서 콜레라가 부산 주변 지역으로, 또 경남 내륙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군부 지역 환자·사망자 문제는 심각해졌다. 이와 같은 발병 동향을 보여준 경남 지역은 콜레라가 종식되던 그해 말 남조선의 10개 시·도 단위 지역 중 높은 순위의 누적 환자·사망자 규모를, 그러나 낮은 순위의 누계 발병·치명도를 보여주었다.BR 이처럼 요약되는 부산과 경남 지역 콜레라 확산 과정과 그 귀결은 여러 특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그 과정에는 세균학적, 자연적 요소와 함께 인문 지리적인, 그리고 사회·경제적, 국가적(national), 그리고 지역적(local) 수준에서의 정치적 요인 등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아시아-태평양 전쟁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구축이라는 동아시아 권역(regional) 수준의 정치 또한 작동하고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하여 발생했던 1946년 콜레라 사태는 전후 동아시아 권역에서 제국의 시대로부터 민족의 시대로의 전환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바로 이것이 콜레라 대유행의 전후 역사적 의미라 할 수 있다.","PeriodicalId":497976,"journal":{"name":"Yeogsa wa gyeong'gye","volume":"52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8-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Yeogsa wa gyeong'gye","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52271/pkhs.2023.08.126.243","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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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1946년 5월 상순 중국 송환자에게서 콜레라가 발병하기 시작한 부산 지역은 그달 중순 무렵 남조선에서 발병자 규모가 가장 큰 지역이 되었다. 하지만, 6월 중순 무렵부터 콜레라 환자 발생 증가 정도가 둔화하기 시작해, 하순 경에는 발병세가 적잖이 ‘약화’하였다. 부산 지역 발병 추이는 경상남도 군부(郡部) 지역과 타도(他道) 지역의 그것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것은 수인성(水因性) 전염병인 콜레라의 발병 상황을 악화시켰던 6월 하순의 대홍수였다. 부산과 달리 홍수 피해가 심각하였던 군부(郡部) 지역에서는 콜레라 발병세가 증대·악화하였다. 이러한 속에서 콜레라가 부산 주변 지역으로, 또 경남 내륙 지역으로 확산하면서, 군부 지역 환자·사망자 문제는 심각해졌다. 이와 같은 발병 동향을 보여준 경남 지역은 콜레라가 종식되던 그해 말 남조선의 10개 시·도 단위 지역 중 높은 순위의 누적 환자·사망자 규모를, 그러나 낮은 순위의 누계 발병·치명도를 보여주었다.BR 이처럼 요약되는 부산과 경남 지역 콜레라 확산 과정과 그 귀결은 여러 특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그 과정에는 세균학적, 자연적 요소와 함께 인문 지리적인, 그리고 사회·경제적, 국가적(national), 그리고 지역적(local) 수준에서의 정치적 요인 등이 작동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아시아-태평양 전쟁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구축이라는 동아시아 권역(regional) 수준의 정치 또한 작동하고 있었다. 이를 배경으로 하여 발생했던 1946년 콜레라 사태는 전후 동아시아 권역에서 제국의 시대로부터 민족의 시대로의 전환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바로 이것이 콜레라 대유행의 전후 역사적 의미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