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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oon-Mong(李順蒙) case : King Sejong’s personnel affairs in the Joseon Dynasty
본 논문은 조선 세종대 남·북방 외적의 정벌 과정에서 활약하여 ‘행운의 장수’라 불린 이순몽을 통해 세종의 인사 실제를 살피고자 한 것이다. 이순몽은 공신 적장으로 무과에 급제해 1419년(세종 1) 6월 대마도 왜인 정벌과 1433년(세종 15) 3월 파저강 야인 토벌에 참전해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 재직하는 내내 황음·수뢰·폭력 등 혐의로 언론의 탄핵에 직면해 파면되고 복직하기를 되풀이했다. 세종은 무엇보다 그의 실전 경험을 높이 평가했다. 희소성 있는 그의 참전 경험이 조선의 국방 대책에 구체성을 부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또 관료로서 결격 사유가 많지만, 세종이 끝내 그를 다시 기용했던 인사 원칙이었다. 이를 관철함으로써 세종은 국방 대책의 유용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