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Academic Traditions and Neo-Confucian Ideas of Lee Chungmin and Lee Youngse","authors":"Yun-Su Jang","doi":"10.18399/actako.2023..92.002","DOIUrl":null,"url":null,"abstract":"이 글은 李忠民(1588-1673)과 李榮世(1618-1698) 父子의 성리사상을 주제로 한 연구로서, 대구권 성리학의 정체성 확립을 시도하는 필자의 기획 중에서 연속적인 의미를 지닌다. 사상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한 강좌지역과 남명학파를 중심으로 한 강우지역으로 구분하던 기존의 영남학파 2大別 지역론과 차별화하여 제3의 지역으로서 ‘대구문화권’을 설정하였고, 그 중에서도 이충민 부자의 삶의 배경이 되었던 ‘칠곡문화권’의 학문적 지형도와 학풍을 고찰하였다.BR 필자는 이 연구를 통해 이충민 부자의 성리사상이 지역 학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 중에서도 개방적 학풍, 우주론적 사색, 안락사상의 면모가 두드러진다는 점을 해명하였다. 이들 부자는 학문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주자학적 道統論에만 매몰되지 않았으며, 道學의 순정성을 의심받던 邵雍과 張載의 사상을 중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家學에 있어서 金宗直, 曺植, 李滉, 鄭逑, 張顯光, 李彦英, 李潤雨와의 學緣을 형성하였고, 그 중에서도 정구, 장현광, 이언영의 영향이 심대하였다. 한편 부자 간에 차별적인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이충민의 경우에는 孝悌를 실천하고 성실하게 학문 연찬에 정진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반면, 이영세의 경우에는 詩文에 능하고 隱逸者로서의 면모가 짙게 드러난다. 이충민의 삶에서 勉勵의 모습이 강하게 남겨진다면, 이영세의 경우에는 樂道의 삶을 추구하는 山林 處士의 여유가 느껴진다.","PeriodicalId":479824,"journal":{"name":"Han'gughag nonjib","volume":"84 1","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Han'gughag nonjib","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18399/actako.2023..92.002","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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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이 글은 李忠民(1588-1673)과 李榮世(1618-1698) 父子의 성리사상을 주제로 한 연구로서, 대구권 성리학의 정체성 확립을 시도하는 필자의 기획 중에서 연속적인 의미를 지닌다. 사상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한 강좌지역과 남명학파를 중심으로 한 강우지역으로 구분하던 기존의 영남학파 2大別 지역론과 차별화하여 제3의 지역으로서 ‘대구문화권’을 설정하였고, 그 중에서도 이충민 부자의 삶의 배경이 되었던 ‘칠곡문화권’의 학문적 지형도와 학풍을 고찰하였다.BR 필자는 이 연구를 통해 이충민 부자의 성리사상이 지역 학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 중에서도 개방적 학풍, 우주론적 사색, 안락사상의 면모가 두드러진다는 점을 해명하였다. 이들 부자는 학문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주자학적 道統論에만 매몰되지 않았으며, 道學의 순정성을 의심받던 邵雍과 張載의 사상을 중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家學에 있어서 金宗直, 曺植, 李滉, 鄭逑, 張顯光, 李彦英, 李潤雨와의 學緣을 형성하였고, 그 중에서도 정구, 장현광, 이언영의 영향이 심대하였다. 한편 부자 간에 차별적인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이충민의 경우에는 孝悌를 실천하고 성실하게 학문 연찬에 정진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반면, 이영세의 경우에는 詩文에 능하고 隱逸者로서의 면모가 짙게 드러난다. 이충민의 삶에서 勉勵의 모습이 강하게 남겨진다면, 이영세의 경우에는 樂道의 삶을 추구하는 山林 處士의 여유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