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 Date : 2023-09-30DOI: 10.18399/actako.2023..92.008
Jinok Hong
본고는 한글전용세대에 해당하는 지금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에서 한자(어)교육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의 고민에서 시작하여, 서울대학교 교양 과목인 〈한국의 한자와 한자어〉의 운영 사례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강의 운영 방안을 모색해 본 것이다. 먼저 서론에서는 한자가 한국 문화 안에서 오랜 시간 성장했고 한국인의 정체성 형성 확립에 주요하게 기여하였으며 어문 생활에서도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에서 대학에서 한자 교육이 주요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논하였다. 이후 제2장에서는 교육 환경 및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여전히 유용하고 흥미로운 대상으로서 한자를 인식하게 하고자 한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서울대학교 교양 한자어 과목의 실제 운영 사례를 자세히 살폈다. 이후 해당 교과목의 강의 설계와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대학 교양 한자(어)/한문 교육이 지향해 나가야 할 사항으로서, 1) ‘복합적 교육효과를 고려한 융합 교육’을 위해 다양한 학문과 연계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개발할 필요가 있고, 2) 21세기 대학 교육의 목표 및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핵심 역량 등을 고려한 학습적 효과를 동시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하며, 3) 여전히 교수자의 이론 강의에 치우쳐져 있는 한자/한문 교육에서 학생들이 ‘수업의 주체’의 위치에 이를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다각적으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논의하였다. 이로써 지금 세대의 학생들에게 한자가 전통 시대의 유물이 아닌 고차원적인 사고 활동까지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 도구로서 여전히 필요불가결하고, 시대적 흐름과 변화에 발맞추어 나가는 학문 대상으로서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title":"Finding Effective Ways to Teach Chinese Characters in University General Education Courses : A Seoul National University Case Study","authors":"Jinok Hong","doi":"10.18399/actako.2023..92.008","DOIUrl":"https://doi.org/10.18399/actako.2023..92.008","url":null,"abstract":"본고는 한글전용세대에 해당하는 지금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에서 한자(어)교육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의 고민에서 시작하여, 서울대학교 교양 과목인 〈한국의 한자와 한자어〉의 운영 사례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강의 운영 방안을 모색해 본 것이다. 먼저 서론에서는 한자가 한국 문화 안에서 오랜 시간 성장했고 한국인의 정체성 형성 확립에 주요하게 기여하였으며 어문 생활에서도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에서 대학에서 한자 교육이 주요하게 이루어져야 함을 논하였다. 이후 제2장에서는 교육 환경 및 시대적 변화에 발맞추어 여전히 유용하고 흥미로운 대상으로서 한자를 인식하게 하고자 한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서울대학교 교양 한자어 과목의 실제 운영 사례를 자세히 살폈다. 이후 해당 교과목의 강의 설계와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대학 교양 한자(어)/한문 교육이 지향해 나가야 할 사항으로서, 1) ‘복합적 교육효과를 고려한 융합 교육’을 위해 다양한 학문과 연계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개발할 필요가 있고, 2) 21세기 대학 교육의 목표 및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핵심 역량 등을 고려한 학습적 효과를 동시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하며, 3) 여전히 교수자의 이론 강의에 치우쳐져 있는 한자/한문 교육에서 학생들이 ‘수업의 주체’의 위치에 이를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다각적으로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논의하였다. 이로써 지금 세대의 학생들에게 한자가 전통 시대의 유물이 아닌 고차원적인 사고 활동까지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 도구로서 여전히 필요불가결하고, 시대적 흐름과 변화에 발맞추어 나가는 학문 대상으로서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덧붙였다.","PeriodicalId":479824,"journal":{"name":"Han'gughag nonjib","volume":"45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81443","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18399/actako.2023..92.003
Hyo-Jeong Lee
이범진은 아관파천의 주역이었지만, 일본과 러시아 등 주변 세력으로부터 견제를 받아 자의든 타의든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896년 6월 주차미국특명공사로 명받아 미국에 머물면서 『미사일록』이란 사행록을 남겼다. 『미사일록』은 1896년 6월 20일부터 1897년 1월 31일까지의 활동이 기록되었는데, 작성 기간이 재임 초기의 약 8개월뿐이기 때문에 전체 재임 기간 중 일부만을 알 수 있지만, 이범진의 미국 견문 내용, 외교 활동, 사상 등을 비교적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유의미하다. 이범진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이른바 근대적 만국공법의 시스템 속에서 파견된 인사였지만, 그의 저작인 『미사일록』은 조선시대 사행록의 전통 속에서 서술되었다. 개인의 사적 일기라기보다는 공식 보고서에 가까우며, 따라서 공사 혼자만의 기록이 아닌 일행들과 함께 공동으로 저작되고 소유되는 특징을 보인다.BR 이범진의 미국 견문은 결국 새로운 제국, 미국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방문했던 워싱턴 기념탑, 국회의사당, 박물관 등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당대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소였다. 이범진은 그 안에서 조선이 살아나갈 방법을 찾고자 하였다. 그는 이미 근대의 환경에 익숙한 듯이 미국의 제도나 풍습, 여성 등 대부분의 견문에서 긍정적이며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결국 약소국인 조선이 제국들의 질서 속에서 소위 ‘부국강병’을 이룬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는 못하였다.
{"title":"The Study of Misailrok Written by Lee Beom-jin, the Chosun Minister to the US in 1896","authors":"Hyo-Jeong Lee","doi":"10.18399/actako.2023..92.003","DOIUrl":"https://doi.org/10.18399/actako.2023..92.003","url":null,"abstract":"이범진은 아관파천의 주역이었지만, 일본과 러시아 등 주변 세력으로부터 견제를 받아 자의든 타의든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896년 6월 주차미국특명공사로 명받아 미국에 머물면서 『미사일록』이란 사행록을 남겼다. 『미사일록』은 1896년 6월 20일부터 1897년 1월 31일까지의 활동이 기록되었는데, 작성 기간이 재임 초기의 약 8개월뿐이기 때문에 전체 재임 기간 중 일부만을 알 수 있지만, 이범진의 미국 견문 내용, 외교 활동, 사상 등을 비교적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유의미하다. 이범진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이른바 근대적 만국공법의 시스템 속에서 파견된 인사였지만, 그의 저작인 『미사일록』은 조선시대 사행록의 전통 속에서 서술되었다. 개인의 사적 일기라기보다는 공식 보고서에 가까우며, 따라서 공사 혼자만의 기록이 아닌 일행들과 함께 공동으로 저작되고 소유되는 특징을 보인다.BR 이범진의 미국 견문은 결국 새로운 제국, 미국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방문했던 워싱턴 기념탑, 국회의사당, 박물관 등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당대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소였다. 이범진은 그 안에서 조선이 살아나갈 방법을 찾고자 하였다. 그는 이미 근대의 환경에 익숙한 듯이 미국의 제도나 풍습, 여성 등 대부분의 견문에서 긍정적이며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으나, 결국 약소국인 조선이 제국들의 질서 속에서 소위 ‘부국강병’을 이룬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는 못하였다.","PeriodicalId":479824,"journal":{"name":"Han'gughag nonjib","volume":"98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81458","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18399/actako.2023..92.005
Gihwa Jeon
본고는 고전서사를 SF로 재창작한 사례들을 고전문학콘텐츠의 주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때 고전서사의 계승과 변주라는 넓은 스펙트럼을 파악하는 한 방법으로서 〈심청전〉을 재창작한 소설 두 편을 중심으로 구체적 양상을 비교하며 살피고, 그 재창작의 특징과 의미를 논하였다. 우선적으로는 재창작을 통해 고전서사에 관한 재해석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제시하면서, 재창작 작품이 원전과의 대화적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지에 관한 검토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을 제언하였다. 다음으로는 SF로의 재창작에 있어 고전서사가 지닌 환상성이란 그 자체로 SF의 세계관을 건설하는 데 유용한 매개로서 역할하며 과학적 상상력이 극대화될 수 있는 지점임을 논하였다. 고전서사의 환상적인 요소들을 비현실적이라며 제거해왔던 개작의 방향과는 달리, SF를 통한 재창작은 그러한 환상적 요소들을 재해석하여 낯선 지평 위에 고전서사를 재구축하며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보았다. 이상의 논의에 비추어 볼 때, 고전서사의 SF로의 재창작은 고전서사에 나타나는 환상성의 재해석을 통해 한국소설사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시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아가 고전문학의 문제적 연속성을 사유케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될 필요가 있다.
{"title":"The New Wave of Cultural Content in Korean Literature: Rewriting Classic Korean Stories into Science Fiction","authors":"Gihwa Jeon","doi":"10.18399/actako.2023..92.005","DOIUrl":"https://doi.org/10.18399/actako.2023..92.005","url":null,"abstract":"본고는 고전서사를 SF로 재창작한 사례들을 고전문학콘텐츠의 주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때 고전서사의 계승과 변주라는 넓은 스펙트럼을 파악하는 한 방법으로서 〈심청전〉을 재창작한 소설 두 편을 중심으로 구체적 양상을 비교하며 살피고, 그 재창작의 특징과 의미를 논하였다. 우선적으로는 재창작을 통해 고전서사에 관한 재해석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제시하면서, 재창작 작품이 원전과의 대화적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지에 관한 검토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을 제언하였다. 다음으로는 SF로의 재창작에 있어 고전서사가 지닌 환상성이란 그 자체로 SF의 세계관을 건설하는 데 유용한 매개로서 역할하며 과학적 상상력이 극대화될 수 있는 지점임을 논하였다. 고전서사의 환상적인 요소들을 비현실적이라며 제거해왔던 개작의 방향과는 달리, SF를 통한 재창작은 그러한 환상적 요소들을 재해석하여 낯선 지평 위에 고전서사를 재구축하며 경이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보았다. 이상의 논의에 비추어 볼 때, 고전서사의 SF로의 재창작은 고전서사에 나타나는 환상성의 재해석을 통해 한국소설사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시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아가 고전문학의 문제적 연속성을 사유케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될 필요가 있다.","PeriodicalId":479824,"journal":{"name":"Han'gughag nonjib","volume":"49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81332","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18399/actako.2023..92.004
Yunmi Chae
본 논문은 전남대 소장본 『위문강일기』의 서사 특성을 처음으로 논의한 것이다. 『위문강일기』는 계모형 가정소설 『문성기』의 이본이다. 본고는 먼저 『문성기』의 새로운 이본으로 계명대 소장본을 소개하였다. 이어서 전남대 소장본의 경우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위문강일기』로 제목을 수정하고 『위문강일기』의 서사단락을 제시하여 이 자료가 낙질본임에도 불구하고 계모형 가정소설의 핵심 서사구조를 온전히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자료를 대상으로 서사 특성을 논의할 만하다고 판단하였다.BR 『위문강일기』의 서사 특성은 크게 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계모와 전처소생의 갈등을 첩과 적자의 신분 갈등으로 예각화하여 다룬다. 계모의 욕망으로 인해 첩과 적자의 신분이 각각 정실과 서자로 전도되고 이로부터 전개되는 계모 박대담은 전처소생을 서얼 신분으로 길들이기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둘째 여주인공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이 작품은 여주인공의 서사를 통해 수난과 성취의 낙폭을 극대화시키고 여주인공이 작품의 핵심 문제인 친모의 신분 복권 및 계모 징치를 주도한다. 셋째 가부장에 대한 다각적인 비판이 이루어진다. 이 작품은 가부장을 일관되게 부정적으로 형상화하는 한편 남녀 주인공이 가부장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무엇보다도 지배층 남성이 가부장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도록 한다.BR 『위문강일기』는 결과적으로 가부장적 가족질서를 복원하는 계모형 가정소설의 관습적인 틀을 답습하는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현실주의적 세계관을 유지하는 가운데 당대 사회 문제인 처첩과 적서 갈등을 계모와 전처소생의 관계로 치환하여 다루면서, 문제의 원인을 계모보다 가부장에게서 찾으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 비판적 문제의식과 대응방식이 여타 계모형 가정소설과 변별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title":"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the Narrative of Wimungang Ilgi in Chonnam National University Collection","authors":"Yunmi Chae","doi":"10.18399/actako.2023..92.004","DOIUrl":"https://doi.org/10.18399/actako.2023..92.004","url":null,"abstract":"본 논문은 전남대 소장본 『위문강일기』의 서사 특성을 처음으로 논의한 것이다. 『위문강일기』는 계모형 가정소설 『문성기』의 이본이다. 본고는 먼저 『문성기』의 새로운 이본으로 계명대 소장본을 소개하였다. 이어서 전남대 소장본의 경우 기존에 알려진 것과 달리 『위문강일기』로 제목을 수정하고 『위문강일기』의 서사단락을 제시하여 이 자료가 낙질본임에도 불구하고 계모형 가정소설의 핵심 서사구조를 온전히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자료를 대상으로 서사 특성을 논의할 만하다고 판단하였다.BR 『위문강일기』의 서사 특성은 크게 세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계모와 전처소생의 갈등을 첩과 적자의 신분 갈등으로 예각화하여 다룬다. 계모의 욕망으로 인해 첩과 적자의 신분이 각각 정실과 서자로 전도되고 이로부터 전개되는 계모 박대담은 전처소생을 서얼 신분으로 길들이기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둘째 여주인공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된다. 이 작품은 여주인공의 서사를 통해 수난과 성취의 낙폭을 극대화시키고 여주인공이 작품의 핵심 문제인 친모의 신분 복권 및 계모 징치를 주도한다. 셋째 가부장에 대한 다각적인 비판이 이루어진다. 이 작품은 가부장을 일관되게 부정적으로 형상화하는 한편 남녀 주인공이 가부장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무엇보다도 지배층 남성이 가부장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도록 한다.BR 『위문강일기』는 결과적으로 가부장적 가족질서를 복원하는 계모형 가정소설의 관습적인 틀을 답습하는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현실주의적 세계관을 유지하는 가운데 당대 사회 문제인 처첩과 적서 갈등을 계모와 전처소생의 관계로 치환하여 다루면서, 문제의 원인을 계모보다 가부장에게서 찾으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 비판적 문제의식과 대응방식이 여타 계모형 가정소설과 변별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PeriodicalId":479824,"journal":{"name":"Han'gughag nonjib","volume":"22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81331","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18399/actako.2023..92.006
Younghee Lee
이 논문은 최승자의 초기 시에 나타난 불안의 양상을 고찰하여 그의 시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간 최승자의 초기 시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척됐는데, 그에 대한 논의가 대체로 ‘부정성’에 집중됐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의 시의 특징적인 현상인 감정 정황과 그것을 작동시키는 본유감정을 규명하여, 그의 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이 논의에 우선하여 최승자의 시를 지배하는 주된 감정은 불안이며, 이것은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전제하는 것이 본 글의 문제설정이다. 그의 시에서 감정으로의 불안은 외부 세계의 구조와 그 구조가 가하는 폭압성이 끼친 영향으로 인해 내면현실감정으로 구성되고, 그것이 시적 자아에 의해 표출된 기분이다. 본 글은 특히 최승자의 시에서 불안은 부정적인 성질에 잠식되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창의적 시 쓰기의 심리현상으로 반영한 점, 시대의 폭압성과 그 진위를 드러내는 방법적 시학으로 삼았다는 점에 관심하였다. 그가 한 시에서 “70년대는 공포였고/80년대는 치욕이었다.”고 표현한 정황과 한 산문에서 “80년대는 본질적으로 70년대의 연장선상에 있다.”라고 고백한 점을 참고하여, 외부 세계의 여건이 내부감정형성의 사정이 된 정황을 추적하였다.BR 최승자의 시에서 불안은 이모티브에 의해 생성되고 구축되고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시적 서사에서 주체의 나약하고 부적응적인 모습은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불안의 형편이며, 격앙된 목소리는 시대의 위협 수위를 드러내는 불안의 배경을 가리킨다. 이런 맥락에서 최승자의 시에 나타난 불안은 시 쓰기 양식의 한 방편이면서 방법적 시학으로의 방법적 불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그에게 불안은 1980년대의 지배질서와 억압구조가 가하는 폭압성에 맞서는 시적 질료로써 활용되고 반사되고 응결되고 확산되면서 증폭되고 강화되는 등 다종양상으로 쓰임을 받는다. 그 쓰임을 세 가지 양상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관장하는 자연의 질서가 인위적으로 조작되는 세계를 목격하면서, 이 폭압의 세계를 무화시키려는 시적 고민을 인간 고유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준 점. 다음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가속화되는 산업의 시간이 인간의 삶의 의미를 상실케 하는 강제의 세계를 목격하면서, 물질 중심 사회의 무가치성을 드러내려는 시적 고민을 시간을 사물화 시키는 모습을 통해 보여준 점. 마지막으로 경험과 체험과 기억을 누증한 장소인 여성의 몸이 기능화·도구화되는 폭압의 세계를 목격하면서, 인간으로의 여성의 고유성을 재정비하고자 하는 시적 고민을 장소로의 여성의 몸을 리셋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준 점을 고찰하였다. 이와 같은 불안 양상은 시대의 폭압성에 의해 박탈된 존재적 의미와 실존의 가치 회복을 위한 방법적 시학을 기축으로, 시대에 대한 심층적 각성에 값하고자한 감정의 시적 수행과 다름이 없다. 이 수행이 창의적 시 쓰기를 촉진시키는 불안의 이모티브이며, 이 자극은 궁극적으로 불안의 심리현상을 통해서 자유에 이르고자 하는 긍정의 가치로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적 주체에게 불안은 ‘지시하는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내적 필연성의 표출이며 시대적 정황인 까닭이다. 그런고로 그의 시에서 불안은 세계의 실체를 가시화하는 방법적 시학이며 실존의 고유한 개별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자유로의 기제라 할 수 있다. 이로써 본 글은 최승자의 시에 나타난 불안 양상을 고찰하면서 시에서 불안은 인간으로의 존재적 가치를 회복하여 자유로의 지향을 수행하려는 방법적 시학이며, 존재에 대한 가치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삶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실천시학의 한 모습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였다.
{"title":"The Aspects of Anxiety Presented in Seungja Choi\"s Early Poetry","authors":"Younghee Lee","doi":"10.18399/actako.2023..92.006","DOIUrl":"https://doi.org/10.18399/actako.2023..92.006","url":null,"abstract":"이 논문은 최승자의 초기 시에 나타난 불안의 양상을 고찰하여 그의 시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간 최승자의 초기 시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척됐는데, 그에 대한 논의가 대체로 ‘부정성’에 집중됐다는 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의 시의 특징적인 현상인 감정 정황과 그것을 작동시키는 본유감정을 규명하여, 그의 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이 논의에 우선하여 최승자의 시를 지배하는 주된 감정은 불안이며, 이것은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전제하는 것이 본 글의 문제설정이다. 그의 시에서 감정으로의 불안은 외부 세계의 구조와 그 구조가 가하는 폭압성이 끼친 영향으로 인해 내면현실감정으로 구성되고, 그것이 시적 자아에 의해 표출된 기분이다. 본 글은 특히 최승자의 시에서 불안은 부정적인 성질에 잠식되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창의적 시 쓰기의 심리현상으로 반영한 점, 시대의 폭압성과 그 진위를 드러내는 방법적 시학으로 삼았다는 점에 관심하였다. 그가 한 시에서 “70년대는 공포였고/80년대는 치욕이었다.”고 표현한 정황과 한 산문에서 “80년대는 본질적으로 70년대의 연장선상에 있다.”라고 고백한 점을 참고하여, 외부 세계의 여건이 내부감정형성의 사정이 된 정황을 추적하였다.BR 최승자의 시에서 불안은 이모티브에 의해 생성되고 구축되고 변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시적 서사에서 주체의 나약하고 부적응적인 모습은 시대의 모순을 드러내는 불안의 형편이며, 격앙된 목소리는 시대의 위협 수위를 드러내는 불안의 배경을 가리킨다. 이런 맥락에서 최승자의 시에 나타난 불안은 시 쓰기 양식의 한 방편이면서 방법적 시학으로의 방법적 불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그에게 불안은 1980년대의 지배질서와 억압구조가 가하는 폭압성에 맞서는 시적 질료로써 활용되고 반사되고 응결되고 확산되면서 증폭되고 강화되는 등 다종양상으로 쓰임을 받는다. 그 쓰임을 세 가지 양상으로 살펴보았다. 먼저 인간의 탄생과 죽음을 관장하는 자연의 질서가 인위적으로 조작되는 세계를 목격하면서, 이 폭압의 세계를 무화시키려는 시적 고민을 인간 고유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준 점. 다음은 사회가 발전하면서 가속화되는 산업의 시간이 인간의 삶의 의미를 상실케 하는 강제의 세계를 목격하면서, 물질 중심 사회의 무가치성을 드러내려는 시적 고민을 시간을 사물화 시키는 모습을 통해 보여준 점. 마지막으로 경험과 체험과 기억을 누증한 장소인 여성의 몸이 기능화·도구화되는 폭압의 세계를 목격하면서, 인간으로의 여성의 고유성을 재정비하고자 하는 시적 고민을 장소로의 여성의 몸을 리셋하는 모습을 통해 보여준 점을 고찰하였다. 이와 같은 불안 양상은 시대의 폭압성에 의해 박탈된 존재적 의미와 실존의 가치 회복을 위한 방법적 시학을 기축으로, 시대에 대한 심층적 각성에 값하고자한 감정의 시적 수행과 다름이 없다. 이 수행이 창의적 시 쓰기를 촉진시키는 불안의 이모티브이며, 이 자극은 궁극적으로 불안의 심리현상을 통해서 자유에 이르고자 하는 긍정의 가치로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적 주체에게 불안은 ‘지시하는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내적 필연성의 표출이며 시대적 정황인 까닭이다. 그런고로 그의 시에서 불안은 세계의 실체를 가시화하는 방법적 시학이며 실존의 고유한 개별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자유로의 기제라 할 수 있다. 이로써 본 글은 최승자의 시에 나타난 불안 양상을 고찰하면서 시에서 불안은 인간으로의 존재적 가치를 회복하여 자유로의 지향을 수행하려는 방법적 시학이며, 존재에 대한 가치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삶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실천시학의 한 모습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였다.","PeriodicalId":479824,"journal":{"name":"Han'gughag nonjib","volume":"14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81457","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18399/actako.2023..92.009
Su-deok Kim
『열반경』에서는 대승의 보살이 대반열반에 머무르기 위해 갖추어야 할 7선법(七善法)과 사무량심(四無量心)의 두 범행 중 사무량심의 실천행으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이 제시되고 있다.BR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에 대해 가섭은 각각에 삼연(三緣)으로 나누고, 또 자비와 희사의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세존은 삼연으로 나누거나 자비만을 강조하기보다는 자·비·희·사의 네 가지가 고루 갖추어진 것이 선근의 근본으로서 범행임을 강조한다.BR 본 논문은 선근의 근본인 사무량심의 실천행으로 제시된 육바라밀의 보시와 순타가 세존께 마지막 공양을 올림으로 인해 성취한 보시바라밀의 구족(具足)과 관련하여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BR 본 연구를 통해서 순타의 마지막 공양에는 보시를 행할 때 갖추어야 될 삼륜청정의 인(因)이 다 갖추어져 있고, 그 인은 보시바라밀 구족의 과(果)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범행의 실천행인 보시바라밀 구족을 위해서는 자·비·희·사의 평등한 마음으로 해야 하고 삼륜이 청정해야 한다. 순타는 보시바라밀 구족을 통해 성문·연각의 경계에서 벗어나 십지(十地)에 머무르게 된다.BR 대승심을 일으킨 순타의 보시바라밀행과 같이 우리는 타인을 위하고, 사랑하고, 이익을 주고, 함께 기뻐하는 마음, 평등한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는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또 한국 불교에서 삼보에 공양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 진정한 대승적인 보살의 서원이 담긴 보시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BR 나아가 대승 보살의 보시바라밀행과 회향, 서원으로 다시 한번 신구의(身口意)로 행하는 스스로의 모든 행위를 자각(自覺)하고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title":"On the Pure Practices of Bodhisattvas and Completing the Perfection of Generosity: Focused on the Mahāparinirvāṇa Sūtra and Cunda’s Last Meal Offering","authors":"Su-deok Kim","doi":"10.18399/actako.2023..92.009","DOIUrl":"https://doi.org/10.18399/actako.2023..92.009","url":null,"abstract":"『열반경』에서는 대승의 보살이 대반열반에 머무르기 위해 갖추어야 할 7선법(七善法)과 사무량심(四無量心)의 두 범행 중 사무량심의 실천행으로 육바라밀(六波羅蜜)이 제시되고 있다.BR 자·비·희·사(慈·悲·喜·捨)의 사무량심에 대해 가섭은 각각에 삼연(三緣)으로 나누고, 또 자비와 희사의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세존은 삼연으로 나누거나 자비만을 강조하기보다는 자·비·희·사의 네 가지가 고루 갖추어진 것이 선근의 근본으로서 범행임을 강조한다.BR 본 논문은 선근의 근본인 사무량심의 실천행으로 제시된 육바라밀의 보시와 순타가 세존께 마지막 공양을 올림으로 인해 성취한 보시바라밀의 구족(具足)과 관련하여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BR 본 연구를 통해서 순타의 마지막 공양에는 보시를 행할 때 갖추어야 될 삼륜청정의 인(因)이 다 갖추어져 있고, 그 인은 보시바라밀 구족의 과(果)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범행의 실천행인 보시바라밀 구족을 위해서는 자·비·희·사의 평등한 마음으로 해야 하고 삼륜이 청정해야 한다. 순타는 보시바라밀 구족을 통해 성문·연각의 경계에서 벗어나 십지(十地)에 머무르게 된다.BR 대승심을 일으킨 순타의 보시바라밀행과 같이 우리는 타인을 위하고, 사랑하고, 이익을 주고, 함께 기뻐하는 마음, 평등한 마음으로 보시를 행하는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또 한국 불교에서 삼보에 공양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 진정한 대승적인 보살의 서원이 담긴 보시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BR 나아가 대승 보살의 보시바라밀행과 회향, 서원으로 다시 한번 신구의(身口意)로 행하는 스스로의 모든 행위를 자각(自覺)하고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PeriodicalId":479824,"journal":{"name":"Han'gughag nonjib","volume":"35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82432","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18399/actako.2023..92.007
KookHwan Lee
시카고대학 총장 허친스가 추구했던 자유교양교육의 이념은 1960년대 미국과 유럽교육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그가 자유교양교육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고전읽기’였다. 이를 국내에 이식하고자 했던 지식인과 교육자들은 1968년 고전읽기 독서운동으로 ‘자유교양대회’를 주최하였다. 이 대회는 당시 교육 환경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지역 대결 구도의 과열 경쟁과 지식을 나열하는 평가 방식이 교육계 안팎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고전을 번역하고 보급하는 과정에서 주최 측은 판매비리를 일삼았고, 그 결과로 대회는 폐지되었다. 1970년대 우리 교육에서 지역 대결구도, 지식 암기 중심의 경쟁 방식, 책 판매에 개입된 뒷거래 등은 자유교양대회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었다. 자유교양대회를 전국적인 규모로 키운 것은 국가 권력이었고, 국민정신 개조에 부응했던 이 대회를 폐지한 것도 국가 권력이었다. 자유교양대회는 1968년 1회 대회로 시작하여 1975년 8회 대회 예선까지 치르고 종료되었다. 관련자료들을 통해 자유교양대회가 1970년대 이른바 ‘독서세대’를 형성하는 데 주요 역할을 하였고, 이러한 세대가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시민의 주축으로 성장했음을 확인하였다. 이제 과거 자유교양대회의 문제점들을 돌아보고 새로운 고전독서운동을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title":"A study on Liberal Arts competition as a reading movement in the 1960s-1970s","authors":"KookHwan Lee","doi":"10.18399/actako.2023..92.007","DOIUrl":"https://doi.org/10.18399/actako.2023..92.007","url":null,"abstract":"시카고대학 총장 허친스가 추구했던 자유교양교육의 이념은 1960년대 미국과 유럽교육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그가 자유교양교육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고전읽기’였다. 이를 국내에 이식하고자 했던 지식인과 교육자들은 1968년 고전읽기 독서운동으로 ‘자유교양대회’를 주최하였다. 이 대회는 당시 교육 환경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지역 대결 구도의 과열 경쟁과 지식을 나열하는 평가 방식이 교육계 안팎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고전을 번역하고 보급하는 과정에서 주최 측은 판매비리를 일삼았고, 그 결과로 대회는 폐지되었다. 1970년대 우리 교육에서 지역 대결구도, 지식 암기 중심의 경쟁 방식, 책 판매에 개입된 뒷거래 등은 자유교양대회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었다. 자유교양대회를 전국적인 규모로 키운 것은 국가 권력이었고, 국민정신 개조에 부응했던 이 대회를 폐지한 것도 국가 권력이었다. 자유교양대회는 1968년 1회 대회로 시작하여 1975년 8회 대회 예선까지 치르고 종료되었다. 관련자료들을 통해 자유교양대회가 1970년대 이른바 ‘독서세대’를 형성하는 데 주요 역할을 하였고, 이러한 세대가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견인하는 시민의 주축으로 성장했음을 확인하였다. 이제 과거 자유교양대회의 문제점들을 돌아보고 새로운 고전독서운동을 고민해보았으면 한다.","PeriodicalId":479824,"journal":{"name":"Han'gughag nonjib","volume":"56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82254","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18399/actako.2023..92.001
Kwangyoun Park
이 글에서는 십일면관음, 천수관음으로 대표되는 변화관음이 7세기 후반~8세기 초반의 신라에서는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논증하고 그 이유를 당과 신라의 불교문화의 차이 속에서 찾아보았다.BR 선행 연구에 의하면, 당에서는 현장이 『십일면심주경』은 한역한 이후인 660년대부터, 신라에서는 680년대부터 변화관음이 유행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주장을 보완하기 위해 거론한 문헌 자료들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당에서 변화관음의 출현은 690년 무측천이 황제를 표방한 이후이고, 현존하는 십일면관음상 및 『삼국유사』의 분황사 천수관음 사례를 볼 때, 신라에서 변화관음이 등장한 것은 8세기 중엽 경덕왕대(742-765)인 것 같다.BR 나당 전쟁 이후 신문왕(재위 681-692)~성덕왕(재위 702-737)의 통치 시기에 신라는 당과의 교류가 활발하였고, 불교문화의 유행에도 민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 사회에서 변화관음의 수용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를 당과 신라 사회에서 불교문화의 위상의 차이, 국가와 불교계의 관계의 차이, 그리고 전쟁 이후 신라 사회에서 불교계에게 요구한 역할의 측면에서 설명하였다.
{"title":"Why is the Transformed Avalokitêśvara not seen in Silla in the late 7th and early 8th centuries?","authors":"Kwangyoun Park","doi":"10.18399/actako.2023..92.001","DOIUrl":"https://doi.org/10.18399/actako.2023..92.001","url":null,"abstract":"이 글에서는 십일면관음, 천수관음으로 대표되는 변화관음이 7세기 후반~8세기 초반의 신라에서는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논증하고 그 이유를 당과 신라의 불교문화의 차이 속에서 찾아보았다.BR 선행 연구에 의하면, 당에서는 현장이 『십일면심주경』은 한역한 이후인 660년대부터, 신라에서는 680년대부터 변화관음이 유행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주장을 보완하기 위해 거론한 문헌 자료들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당에서 변화관음의 출현은 690년 무측천이 황제를 표방한 이후이고, 현존하는 십일면관음상 및 『삼국유사』의 분황사 천수관음 사례를 볼 때, 신라에서 변화관음이 등장한 것은 8세기 중엽 경덕왕대(742-765)인 것 같다.BR 나당 전쟁 이후 신문왕(재위 681-692)~성덕왕(재위 702-737)의 통치 시기에 신라는 당과의 교류가 활발하였고, 불교문화의 유행에도 민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 사회에서 변화관음의 수용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를 당과 신라 사회에서 불교문화의 위상의 차이, 국가와 불교계의 관계의 차이, 그리고 전쟁 이후 신라 사회에서 불교계에게 요구한 역할의 측면에서 설명하였다.","PeriodicalId":479824,"journal":{"name":"Han'gughag nonjib","volume":"22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82262","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
Pub Date : 2023-09-30DOI: 10.18399/actako.2023..92.002
Yun-Su Jang
이 글은 李忠民(1588-1673)과 李榮世(1618-1698) 父子의 성리사상을 주제로 한 연구로서, 대구권 성리학의 정체성 확립을 시도하는 필자의 기획 중에서 연속적인 의미를 지닌다. 사상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한 강좌지역과 남명학파를 중심으로 한 강우지역으로 구분하던 기존의 영남학파 2大別 지역론과 차별화하여 제3의 지역으로서 ‘대구문화권’을 설정하였고, 그 중에서도 이충민 부자의 삶의 배경이 되었던 ‘칠곡문화권’의 학문적 지형도와 학풍을 고찰하였다.BR 필자는 이 연구를 통해 이충민 부자의 성리사상이 지역 학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 중에서도 개방적 학풍, 우주론적 사색, 안락사상의 면모가 두드러진다는 점을 해명하였다. 이들 부자는 학문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주자학적 道統論에만 매몰되지 않았으며, 道學의 순정성을 의심받던 邵雍과 張載의 사상을 중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家學에 있어서 金宗直, 曺植, 李滉, 鄭逑, 張顯光, 李彦英, 李潤雨와의 學緣을 형성하였고, 그 중에서도 정구, 장현광, 이언영의 영향이 심대하였다. 한편 부자 간에 차별적인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이충민의 경우에는 孝悌를 실천하고 성실하게 학문 연찬에 정진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반면, 이영세의 경우에는 詩文에 능하고 隱逸者로서의 면모가 짙게 드러난다. 이충민의 삶에서 勉勵의 모습이 강하게 남겨진다면, 이영세의 경우에는 樂道의 삶을 추구하는 山林 處士의 여유가 느껴진다.
{"title":"Academic Traditions and Neo-Confucian Ideas of Lee Chungmin and Lee Youngse","authors":"Yun-Su Jang","doi":"10.18399/actako.2023..92.002","DOIUrl":"https://doi.org/10.18399/actako.2023..92.002","url":null,"abstract":"이 글은 李忠民(1588-1673)과 李榮世(1618-1698) 父子의 성리사상을 주제로 한 연구로서, 대구권 성리학의 정체성 확립을 시도하는 필자의 기획 중에서 연속적인 의미를 지닌다. 사상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한 강좌지역과 남명학파를 중심으로 한 강우지역으로 구분하던 기존의 영남학파 2大別 지역론과 차별화하여 제3의 지역으로서 ‘대구문화권’을 설정하였고, 그 중에서도 이충민 부자의 삶의 배경이 되었던 ‘칠곡문화권’의 학문적 지형도와 학풍을 고찰하였다.BR 필자는 이 연구를 통해 이충민 부자의 성리사상이 지역 학풍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 중에서도 개방적 학풍, 우주론적 사색, 안락사상의 면모가 두드러진다는 점을 해명하였다. 이들 부자는 학문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주자학적 道統論에만 매몰되지 않았으며, 道學의 순정성을 의심받던 邵雍과 張載의 사상을 중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家學에 있어서 金宗直, 曺植, 李滉, 鄭逑, 張顯光, 李彦英, 李潤雨와의 學緣을 형성하였고, 그 중에서도 정구, 장현광, 이언영의 영향이 심대하였다. 한편 부자 간에 차별적인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이충민의 경우에는 孝悌를 실천하고 성실하게 학문 연찬에 정진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반면, 이영세의 경우에는 詩文에 능하고 隱逸者로서의 면모가 짙게 드러난다. 이충민의 삶에서 勉勵의 모습이 강하게 남겨진다면, 이영세의 경우에는 樂道의 삶을 추구하는 山林 處士의 여유가 느껴진다.","PeriodicalId":479824,"journal":{"name":"Han'gughag nonjib","volume":"84 1","pages":"0"},"PeriodicalIF":0.0,"publicationDate":"2023-09-30","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null,"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135081315","PeriodicalName":null,"FirstCategoryId":null,"ListUrlMain":null,"RegionNum":0,"RegionCategory":"","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EPubDate":null,"PubModel":null,"JCR":null,"JCRName":null,"Score":null,"Total":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