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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dy on the Human Nature with Philosophy of Education: Focusing on the Concept of 'Nature' in Ancient Greek Thought
본 연구는 고대 그리스 사상에 나타난 ‘자연’ 개념에 기반하여 인간 본성의 의미와 그 실현 가능성을 교육철학적으로 고찰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일찍이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연’을 주된 학문적 관심사로 삼았으며 그 관점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인간의 본성을 이기적 욕망으로 보는 일부 소피스트들의 관점을 들 수 있는데, 이 관점은 순전히 경험적 사고에서 도출된 견해로 인간의 본성을 유한성 안에 고착시킴으로써 정신적 발달의 측면을 도외시한다. 이와는 달리,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형이상학적 이념으로 정립시키는 가운데 본성의 다양한 측면들을 조율하는 신적 지성을 하나의 보편자로 상정한다. 다만 플라톤의 ‘형식으로서의 자연’은 초월적 의미의 추상적 보편자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으로서의 자연’은 각 개별자에 내재하여 그 고유한 발달을 주도하는 구체적 보편자로 설명된다는 점에서 이 두 관점은 구분되어 논의될 필요가 있다. 이때 목적이 완전히 실현된 상태에서 구현되는 지성의 자유는 본질과 현상 그 어느 쪽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그리하여 현상이 살아있는 본질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최고선’의 경지로 설명된다. 결국, 인간 본성이 실현된다는 것은 학습자 안에 잠재된 지성이 그릇된 욕망이나 자기합리화에 갇히지 않고 지속적인 자기운동을 통해 현실화한다는 것을 뜻하며, 바로 이 점이 고대 그리스의 자연관에서 시사 받을 수 있는 ‘발달’의 사변적 의미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