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忠清地区盘索里歌词的文化和意义","authors":"Hye-jin Choi","doi":"10.20864/skl.2023.10.80.231","DOIUrl":null,"url":null,"abstract":"본 논의는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향유된 판소리 사설을 살펴 판소리의 정서적, 지역적 기반이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는지를 살피고자 하였다. 특히 고제, 중고제 사설로 확인된 작품을 중심으로 중고제와 지역 정서의 연관성을 논의하였다. 이를 위해 유진한의 〈춘향가〉와 방진관의 〈심청가〉 사설을 대상으로 초기 판소리에서 다루어졌던 사회문화적 맥락과 전승, 사설에 나타난 의미를 파악하였다. 이를 통해 충청지역의 정서적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BR 첫째, 양반문화의 정서가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시 작품인 〈춘향가〉는 가장 오래된 〈춘향가〉로서의 위상을 가진 동시에 〈춘향가〉 사설의 첫 번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시로 지어졌으며 양반들의 문화 전통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 방진관의 〈심청가〉 역시 효의 윤리에 충실한 심청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서 이 역시 유교적 윤리관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BR 둘째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서가 드러나고 있다. 〈춘향가〉에서는 춘향 설화를 바탕으로 양반계급 이도령이 처한 상황과 당대의 삶이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기생 춘향을 향한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그림으로써 계급사회를 비판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심청가〉에서는 당대 삶의 피폐함과 가난의 문제가 매우 자세하게 다루어져서 현실적 삶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하겠다.BR 셋째, 진취적 정서가 있다. 유진한은 충청도에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은석시사 등 당대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고 시단을 열었던 향반이다. 그는 〈춘향가〉 뿐 아니라 고전소설 〈사씨남정기〉를 바탕으로 쓴 〈유한림영사부인고사당가〉도 한시로 만들어 노래로 부르도록 하였다. 당시 이러한 이야기노래는 타령조로 부르던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19세기 명창 방만춘은 황해도 음률가와 〈심청가〉를 만들어 새로운 스타일의 〈심청가〉를 확립했다. 그리고 이를 가문소리로 이어지게 하였다. 이를 보아 충청지역은 새로운 문화예술의 터전이 되고 판소리 정립의 기틀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화에 대한 진취적 사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BR 넷째, 풍류 정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진한의 〈춘향가〉는 당대 문인들의 시사활동을 통해 이루어진 새로운 풍류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서산의 방만춘 가문은 세습예인으로 판소리는 물론 풍류나 춤 등을 전승하였는데, 이러한 전통은 현재 서산 심씨 가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곧 충청지역은 양반들과 연합하여 소리꾼들의 창의성이 개성적으로 발휘되어 갔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중고제는 판소리 고제를 이어 소리꾼들의 개성과 실력을 인정하며 발전되어 갔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가곡풍의 창법이나 평평하고 담백한 창법 등은 이러한 정통성을 기반으로 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BR 다섯째, 고제에서 중고제로 이어진 판소리는 충청지역에서 널리 사랑받으며 전국적 확산을 일으켰다. 판소리는 이야기 노래로 그 안에 지역적 정서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언어와 풍속, 가치관의 문제 등이 모두 포함되며 변화해 간다. 따라서 유진한의 〈춘향가〉는 충청도 18세기의 정서가, 방진관의 〈심청가〉에는 충청도 19세기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라 보아도 좋을 듯하다.","PeriodicalId":439469,"journal":{"name":"The Studies of Korean Literature","volume":"28 8","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10-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title\":\"Culture and Meaning in Pansori Lyrics in Chungcheong region\",\"authors\":\"Hye-jin Choi\",\"doi\":\"10.20864/skl.2023.10.80.231\",\"DOIUrl\":null,\"url\":null,\"abstract\":\"본 논의는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향유된 판소리 사설을 살펴 판소리의 정서적, 지역적 기반이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는지를 살피고자 하였다. 특히 고제, 중고제 사설로 확인된 작품을 중심으로 중고제와 지역 정서의 연관성을 논의하였다. 이를 위해 유진한의 〈춘향가〉와 방진관의 〈심청가〉 사설을 대상으로 초기 판소리에서 다루어졌던 사회문화적 맥락과 전승, 사설에 나타난 의미를 파악하였다. 이를 통해 충청지역의 정서적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BR 첫째, 양반문화의 정서가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시 작품인 〈춘향가〉는 가장 오래된 〈춘향가〉로서의 위상을 가진 동시에 〈춘향가〉 사설의 첫 번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시로 지어졌으며 양반들의 문화 전통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 방진관의 〈심청가〉 역시 효의 윤리에 충실한 심청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서 이 역시 유교적 윤리관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BR 둘째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서가 드러나고 있다. 〈춘향가〉에서는 춘향 설화를 바탕으로 양반계급 이도령이 처한 상황과 당대의 삶이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기생 춘향을 향한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그림으로써 계급사회를 비판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심청가〉에서는 당대 삶의 피폐함과 가난의 문제가 매우 자세하게 다루어져서 현실적 삶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하겠다.BR 셋째, 진취적 정서가 있다. 유진한은 충청도에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은석시사 등 당대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고 시단을 열었던 향반이다. 그는 〈춘향가〉 뿐 아니라 고전소설 〈사씨남정기〉를 바탕으로 쓴 〈유한림영사부인고사당가〉도 한시로 만들어 노래로 부르도록 하였다. 당시 이러한 이야기노래는 타령조로 부르던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19세기 명창 방만춘은 황해도 음률가와 〈심청가〉를 만들어 새로운 스타일의 〈심청가〉를 확립했다. 그리고 이를 가문소리로 이어지게 하였다. 이를 보아 충청지역은 새로운 문화예술의 터전이 되고 판소리 정립의 기틀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화에 대한 진취적 사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BR 넷째, 풍류 정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진한의 〈춘향가〉는 당대 문인들의 시사활동을 통해 이루어진 새로운 풍류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서산의 방만춘 가문은 세습예인으로 판소리는 물론 풍류나 춤 등을 전승하였는데, 이러한 전통은 현재 서산 심씨 가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곧 충청지역은 양반들과 연합하여 소리꾼들의 창의성이 개성적으로 발휘되어 갔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중고제는 판소리 고제를 이어 소리꾼들의 개성과 실력을 인정하며 발전되어 갔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가곡풍의 창법이나 평평하고 담백한 창법 등은 이러한 정통성을 기반으로 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BR 다섯째, 고제에서 중고제로 이어진 판소리는 충청지역에서 널리 사랑받으며 전국적 확산을 일으켰다. 판소리는 이야기 노래로 그 안에 지역적 정서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언어와 풍속, 가치관의 문제 등이 모두 포함되며 변화해 간다. 따라서 유진한의 〈춘향가〉는 충청도 18세기의 정서가, 방진관의 〈심청가〉에는 충청도 19세기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라 보아도 좋을 듯하다.\",\"PeriodicalId\":439469,\"journal\":{\"name\":\"The Studies of Korean Literature\",\"volume\":\"28 8\",\"pages\":\"0\"},\"PeriodicalIF\":0.0000,\"publicationDate\":\"2023-10-31\",\"publicationTypes\":\"Journal Article\",\"fieldsOfStudy\":null,\"isOpenAccess\":false,\"openAccessPdf\":\"\",\"citationCount\":\"0\",\"resultStr\":null,\"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The Studies of Korean Literature\",\"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20864/skl.2023.10.80.231\",\"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platform":"Semanticscholar","paperid":null,"PeriodicalName":"The Studies of Korean Literature","FirstCategoryId":"1085","ListUrlMain":"https://doi.org/10.20864/skl.2023.10.80.231","RegionNum":0,"RegionCategory":null,"ArticlePicture":[],"TitleCN":null,"AbstractTextCN":null,"PMCID":null,"EPubDate":"","PubModel":"","JCR":"","JCRName":"","Score":null,"Total":0}
Culture and Meaning in Pansori Lyrics in Chungcheong region
본 논의는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향유된 판소리 사설을 살펴 판소리의 정서적, 지역적 기반이 어떠한 양상으로 드러나는지를 살피고자 하였다. 특히 고제, 중고제 사설로 확인된 작품을 중심으로 중고제와 지역 정서의 연관성을 논의하였다. 이를 위해 유진한의 〈춘향가〉와 방진관의 〈심청가〉 사설을 대상으로 초기 판소리에서 다루어졌던 사회문화적 맥락과 전승, 사설에 나타난 의미를 파악하였다. 이를 통해 충청지역의 정서적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BR 첫째, 양반문화의 정서가 강하게 드러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시 작품인 〈춘향가〉는 가장 오래된 〈춘향가〉로서의 위상을 가진 동시에 〈춘향가〉 사설의 첫 번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시로 지어졌으며 양반들의 문화 전통을 포함하고 있다. 한편 방진관의 〈심청가〉 역시 효의 윤리에 충실한 심청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서 이 역시 유교적 윤리관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BR 둘째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서가 드러나고 있다. 〈춘향가〉에서는 춘향 설화를 바탕으로 양반계급 이도령이 처한 상황과 당대의 삶이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기생 춘향을 향한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그림으로써 계급사회를 비판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심청가〉에서는 당대 삶의 피폐함과 가난의 문제가 매우 자세하게 다루어져서 현실적 삶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하겠다.BR 셋째, 진취적 정서가 있다. 유진한은 충청도에서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은석시사 등 당대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고 시단을 열었던 향반이다. 그는 〈춘향가〉 뿐 아니라 고전소설 〈사씨남정기〉를 바탕으로 쓴 〈유한림영사부인고사당가〉도 한시로 만들어 노래로 부르도록 하였다. 당시 이러한 이야기노래는 타령조로 부르던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19세기 명창 방만춘은 황해도 음률가와 〈심청가〉를 만들어 새로운 스타일의 〈심청가〉를 확립했다. 그리고 이를 가문소리로 이어지게 하였다. 이를 보아 충청지역은 새로운 문화예술의 터전이 되고 판소리 정립의 기틀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문화에 대한 진취적 사고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BR 넷째, 풍류 정신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유진한의 〈춘향가〉는 당대 문인들의 시사활동을 통해 이루어진 새로운 풍류 속에서 탄생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서산의 방만춘 가문은 세습예인으로 판소리는 물론 풍류나 춤 등을 전승하였는데, 이러한 전통은 현재 서산 심씨 가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곧 충청지역은 양반들과 연합하여 소리꾼들의 창의성이 개성적으로 발휘되어 갔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중고제는 판소리 고제를 이어 소리꾼들의 개성과 실력을 인정하며 발전되어 갔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가곡풍의 창법이나 평평하고 담백한 창법 등은 이러한 정통성을 기반으로 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BR 다섯째, 고제에서 중고제로 이어진 판소리는 충청지역에서 널리 사랑받으며 전국적 확산을 일으켰다. 판소리는 이야기 노래로 그 안에 지역적 정서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다. 언어와 풍속, 가치관의 문제 등이 모두 포함되며 변화해 간다. 따라서 유진한의 〈춘향가〉는 충청도 18세기의 정서가, 방진관의 〈심청가〉에는 충청도 19세기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라 보아도 좋을 듯하다.